사진이 잘 나온 날 저녁이 이상하게 허무할 때가 있다. 아침에 나와서 오래 걷고, 괜찮은 장면을 여러 장 건지고, 집 와서 고르면서도 ‘오늘은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파일을 정리하고 나면 갑자기 맥이 빠진다.
이유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기대가 충족돼서 그런 건지, 더 이상 쫓아갈 장면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냥 힘이 다 빠진 느낌이 든다. 다음 날 나가기가 싫어질 때도 있다.
반대로 아무것도 못 건진 날에는 오히려 다음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내일은 다르게 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실패가 동력을 만드는 아이러니가 있다.
좋은 날이 끝나면 그 좋았던 감각을 붙잡고 싶어서 사진을 몇 번이고 다시 열어보게 된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처음의 느낌이 얇아진다. 현장의 공기나 온도는 이미 사라져 있고, 남은 건 평면적인 이미지뿐이다. 그 간극이 허무함을 더 키우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좋은 날이 끝나면 일부러 사진을 바로 정리하지 않는다. 하루 정도 간격을 두고 다시 본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 고르면 기준이 더 담담해진다.
사진이 잘 나온 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기쁨을 길게 가져가는 방법을 모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