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rticle

나만 아는 사진

나만 아는 사진

올리지 않고 하드 어딘가에만 남겨둔 사진들이 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고, 구도가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닌데 그냥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대개 그날의 私人적인 상태와 너무 깊게 연결되어 있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날의 거리,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했던 오후의 골목, 누군가와 헤어진 뒤에 무작정 걸었던 길. 그런 날 찍은 사진들은 나중에 보면 그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사진 자체가 슬프거나 어두운 건 아닌데, 나에게만 그 맥락이 선명하게 붙어 있다.

이런 사진들을 공개하면 사람들이 그냥 ‘흑백 거리 사진’으로만 볼 거라는 걸 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당시의 감정까지 같이 소환된다. 그 간극이 불편하다. 내가 느낀 것과 남이 보는 것 사이의 거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런 사진들은 시리즈에도 넣지 않고, 파일명도 대충 남겨둔다. 가끔 정리하다가 우연히 다시 마주치면 잠시 들여다보다가 다시 폴더를 닫는다. 지우지는 않는다. 아직은 지우고 싶지 않다. 나에게만 남은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있어서다.

사진을 공개한다는 건 결국 내 시선의 일부를 남에게 내주는 일이다. 모든 시선을 다 내주고 싶지는 않다. 어떤 것들은 그냥 나만 알고 있는 채로 남겨두고 싶다.

오늘 하드를 정리하다가 그런 사진 하나를 다시 봤다.

ghmun

Recent Posts

셔터를 누른 직후의 망설임

셔터를 누른 직후의 망설임 셔터를 누르고 나서 바로 뒤를 돌아보거나 화면을 확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1주 ago

평일과 주말의 거리

평일과 주말의 거리 평일에 나가는 것과 주말에 나가는 것은 같은 장소를 가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1주 ago

어깨에 남는 무게

어깨에 남는 무게 하루 종일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 저녁에 어깨 한쪽이 분명히 다르다. 처음에는 신경도…

1주 ago

같은 골목을 반복해서 가게 되는 이유

같은 골목을 반복해서 가게 되는 이유 특정 골목을 이유 없이 반복해서 가게 될 때가 있다.…

1주 ago

집에 가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집에 가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어느 순간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1주 ago

좋은 날 이후에 오는 허무함

좋은 날 이후에 오는 허무함 사진이 잘 나온 날 저녁이 이상하게 허무할 때가 있다. 아침에…

1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