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rticle

거의 다 된 사진을 지울 때

거의 다 된 사진을 지울 때

사진을 고르다 보면 ‘거의 다 됐는데’ 싶은 것들이 꼭 나온다. 구도도 나쁘지 않고, 빛도 적당하고, 타이밍도 큰 문제는 없는데 어딘가 한 군데가 거슬린다. 사람이 반쯤 잘렸거나, 배경에 이상한 간판이 들어갔거나, 그림자가 기대한 방향으로 안 졌거나. 그런 사진들을 남길지 말지 한참을 고민한다.

예전이라면 대부분 남겼을 것이다. ‘다음에 다시 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지금은 거의 지운다. 거의 다 된 사진이 오히려 더 거슬린다. 완전히 실패한 사진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데, 아쉬운 사진은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하드에 남겨두면 나중에 또 열어보게 되고, 열어볼 때마다 ‘이것만 조금만 달랐으면’ 하는 생각이 반복된다.

지우는 순간의 기분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공을 들인 시간을 그냥 없애버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도 지우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남겨둔 사진들만 남아서 기준이 더 선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사진들이 섞여 있으면 전체적인 밀도가 떨어진다.

가끔은 너무 엄격하게 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 내 기준이 바뀌면 그때의 아쉬운 사진이 오히려 더 정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보다 현재의 기준을 지키는 쪽이 더 중요하다. 기준이 흐려지면 다음에 찍을 때도 영향을 받으니까.

오늘은 거의 다 된 사진을 여섯 장 지웠다. 지우면서 조금 아까웠다. 그래도 남긴 세 장이 더 또렷해 보였다.

ghmun

Recent Posts

셔터를 누른 직후의 망설임

셔터를 누른 직후의 망설임 셔터를 누르고 나서 바로 뒤를 돌아보거나 화면을 확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1주 ago

평일과 주말의 거리

평일과 주말의 거리 평일에 나가는 것과 주말에 나가는 것은 같은 장소를 가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1주 ago

어깨에 남는 무게

어깨에 남는 무게 하루 종일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 저녁에 어깨 한쪽이 분명히 다르다. 처음에는 신경도…

1주 ago

같은 골목을 반복해서 가게 되는 이유

같은 골목을 반복해서 가게 되는 이유 특정 골목을 이유 없이 반복해서 가게 될 때가 있다.…

1주 ago

나만 아는 사진

나만 아는 사진 올리지 않고 하드 어딘가에만 남겨둔 사진들이 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고, 구도가…

1주 ago

집에 가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집에 가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어느 순간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1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