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을 집 안에 두고 GR만 챙겨 나가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처음에는 가볍게 다니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습관이 됐다.
가장 큰 이유는 꺼내 드는 동작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슬쩍 꺼내서 찍고 다시 넣는다. 큰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닐 때와는 심리적 부담이 다르다.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는 시간도 짧다. 그 짧은 시간이 거리 사진에서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28mm 화각이 처음에는 답답했다. 가까운 것이 너무 크게 나오고, 배경이 좁아 보여서 구도 잡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그 화각이 익숙해졌다. 시야가 제한되니까 오히려 무엇을 넣을지 더 빨리 결정하게 된다. 망원으로 멀리 있는 것을 끌어오는 사진보다, 내가 그 자리에 직접 있어야만 나오는 사진이 더 좋다.
흑백으로 찍을 때 GR이 특히 편하다. 카메라에서 바로 흑백으로 전환해서 볼 수 있으니까, 현장에서 이미 결과가 대충 보인다. 나중에 후보정으로 살릴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찍을 때 확신이 생기면 셔터를 누르는 기준도 단순해진다.
니콘을 완전히 안 쓰는 건 아니다. 정적인 장면이나 풍경에 가까운 사진을 찍을 때는 아직도 니콘이 낫다. 해상력이나 색감, 조작감에서 오는 여유가 있다. 다만 거리를 오래 걸을 때는 GR이 더 자주 손에 잡힌다. 무겁지 않고, 티가 덜 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카메라는 결국 도구다. 어떤 카메라가 더 우월한가보다, 지금 내가 찍고 싶은 방식에 덜 방해되는 쪽이 중요하다. 지금은 GR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내일은 또 달라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조합이 제일 편하다.
장비를 바꾸는 것보다 그 장비로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자연스럽게 나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