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컬러로 세상을 보는 게 어색해졌다. 카메라를 꺼내지 않은 상태에서도 길을 걸으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흑백 전환이 된다.
특히 그림자가 있는 장면에서 그렇다. 색깔이 남아 있으면 그림자는 그냥 어두운 영역으로만 보인다. 흑백으로 바꾸면 형태와 질감이 살아난다. 벽의 거친 표면, 사람의 실루엣 선, 전선의 가느다란 곡선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색깔이 정보를 너무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후보정 단계에서 흑백으로 바꿨다. 지금은 카메라에서 미리 흑백으로 설정해두고 찍는 날이 많다. 현장에서 이미 결과물이 보이니까 셔터를 누르는 기준이 달라진다. ‘이 색깔이 예뻐서’라는 이유로 찍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가끔 컬러로 찍힌 사진을 다시 보면 이상하게 시끄럽게 느껴진다. 시각 정보가 많아서 시선이 분산된다. 흑백은 필요한 요소만 남긴다. 그 점이 지금 나에게는 더 맞다.
그렇다고 색깔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비 온 뒤 젖은 도로의 반사, 저녁 무렵의 낮은 주황빛, 네온사인이 벽에 번지는 장면 같은 건 아직도 컬러로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컬러로 찍는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보면 결국 흑백으로 변환해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습관이 된 것 같다. 시선이 먼저 흑백의 질감과 형태를 찾는다. 이 버릇이 언제 또 바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