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유럽 3주 다녀오면서 사진을 거의 3천 장 넘게 찍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정리하다 보니 인스타에 올릴 만한 건 20장도 안 됐다. 처음엔 “여행지가 별로였나”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문제는 장소가 아니라 찍는 방식이었다. 다음 여행 갈 때는 좀 다르게 찍어야겠다 싶어서 그동안 느낀 것들을 정리해본다.
에펠탑, 콜로세움 이런 데 가면 다들 정면에서 한 장 찍고 이동한다. 나도 그랬다. 근데 나중에 사진 보면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나오는 사진이랑 별 차이가 없다. 조금만 더 있어보면서 각도를 바꿔보거나, 근처 골목이나 사람들 표정, 노점상 같은 걸 같이 찍어두면 나중에 볼 때 훨씬 그날의 분위기가 살아있다. 랜드마크 사진은 증명사진이고, 진짜 여행의 기억은 그 주변에 있는 경우가 많더라.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사람이 미어터진다. 이럴 때는 오전 8시 전이나 해질녘 이후를 노리는 게 훨씬 낫다. 사람도 적고 빛도 부드러워서 사진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실제로 로마 트레비 분수를 아침 7시에 갔을 때랑 낮 12시에 갔을 때 사진을 비교해보면 같은 장소 맞나 싶을 정도다. 늦잠 좀 포기하면 사진이 확 바뀐다.
여행 가면 음식 사진도 많이 찍게 되는데, 계속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만 찍으면 다 비슷비슷해진다. 접시를 살짝 비스듬히 담거나, 음식점 분위기나 손, 잔 부딪히는 순간 같은 걸 같이 찍으면 그 식사 자체가 기억나는 사진이 된다. 빛 좋은 창가 자리에 앉는 것도 은근히 중요하다. 어두운 조명 밑에서 찍은 음식 사진은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요리여도 칙칙하게 나온다.
이번 여행 전에 렌즈 하나 더 챙길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챙겨서 좋았다. 특히 야경 찍을 때 폰카로는 아무리 나이트모드 써도 한계가 있는데, 카메라로 삼각대 놓고 셔터스피드 좀 길게 잡아서 찍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났다. 무겁긴 한데 그 순간 아니면 다시 못 찍는 장면들이 있어서 후회는 없었다.
여행 중에 매일매일 그날 찍은 사진을 대충이라도 훑어보고 지울 건 지웠다. 이렇게 안 하면 나중에 3천 장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그날 마음에 들었던 사진 한두 장은 바로 간단하게 보정까지 해두면, 여행 끝나고 정리할 때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다.
이건 좀 늦게 알게 된 건데, JPG로만 찍으면 나중에 밝기나 색감 보정할 때 한계가 금방 온다. RAW로 찍어두면 용량은 크지만 나중에 손볼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많다. 특히 노을이나 야경처럼 명암 차이가 큰 장면일수록 RAW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진다.
결국 여행 사진은 얼마나 많이 찍느냐보다 언제, 어떻게 찍느냐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 다음 여행 때는 사진 수는 줄이더라도 한 장 한 장 좀 더 신경 써서 찍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