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현대 건축물을 지도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근데 딱 잘라서 조건을 걸었다 — 한옥 같은 전통 건축물은 범위에서 완전히 빼라고. 건축물 지도라고 하면 당연히 한옥도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무엇을 뺄지가 무엇을 넣을지보다 더 분명했다.
전통 건축은 사진 작업도 하지 말라고 했다
era가 'traditional'인 건물은 UI에서 아예 필터링해서 걸러내라고 했다. 근대·현대 두 시대만 다루는 컨셉이라, 한옥 사진 찍으러 다니는 데 시간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 덕분에 답사 코스도 정동길 근대건축 산책처럼 근현대 건물 위주로만 짜였다. 처음엔 "한옥 몇 개쯤 섞여도 괜찮지 않냐"고 슬쩍 물었다가, "그러면 이 지도가 뭘 다루는 지도인지 헷갈린다"는 답에 바로 접었다.
다른 프로젝트로 통째로 갈아엎으라고 했다
원래 쓰던 korea-architect-archive를 버리고 archi2로 완전히 새로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도메인을 옮기는 것도 Vercel 프로젝트 자체를 바꿔야 하는 작업이라 손이 많이 갔다. 왜 갈아엎어야 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이름부터 다시 짓고 싶어서"라는, 기술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는 답이 돌아왔다. 코드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프로젝트를 통째로 새로 파는 경험은 이때 처음 했다.
옮기라고 해서 옮겼더니 그냥 두라고 했다
한 번은 이 도메인을 architect.invisiblecity.co.kr로 옮기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옮겼다. 근데 며칠 뒤에 "그냥 바꾸지마"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옮기지 말라고 하든가. 결국 architect.ghmun.com으로 그대로 남았다. 도메인 하나 때문에 왔다 갔다 한 시간을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적어도 최종 결정이 나온 뒤로는 두 번 다시 바뀌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다.
답사 코스는 도보 동선까지 확인하라고 했다
건축물 마커만 지도에 찍어놓으면 편했을 텐데, "정동길 근대건축 산책" 같은 코스는 실제로 걸어서 이동 가능한 순서인지 확인하라고 했다. 지도상 거리는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큰길을 빙 돌아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서, 몇 개 코스는 순서를 통째로 바꿔야 했다. 지도 앱 없이 그냥 화면만 보고 걸어도 헤매지 않게 만들라는 게 기준이었는데, 직접 걸어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는 요구라 결국 로드뷰로 구간마다 실제 도로 상황을 하나하나 대조했다.
건축가 이름 표기 순서까지 정해줬다
같은 건물에 원설계자와 리모델링 설계자가 따로 있는 경우, 누구 이름을 먼저 쓸지가 애매했다. "최초 설계자를 먼저, 리모델링은 괄호로"라는 표기 규칙을 정해줘서 301개 건물 정보를 그 규칙대로 다시 손봤다. 사소해 보이는 규칙인데 막상 적용하려니 예외 케이스가 은근히 많았다.
철거된 건물도 지도에 남기라고 했다
301개 건물 중 몇 곳은 이미 철거되고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니 빼는 게 맞지 않냐고 물었더니, "철거됐다는 사실 자체가 근현대 건축사의 일부"라며 남겨두라고 했다. 대신 마커 색을 다르게 하고 "현존하지 않음" 표시를 달아서, 답사 코스에 실수로 들어가지 않게만 처리했다. 사라진 건물까지 기록하겠다는 고집이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지도를 다 만들고 나서 보니 그 표시 때문에 오히려 이 지도가 더 진지해 보였다.
사용법: 시대 필터로 걸러본 뒤 코스를 골라라
지도 위쪽에서 1876년부터 지금까지 시대 구간을 슬라이더로 좁힐 수 있다(예: 1960~1980년대만 보기). 걸러진 건물들을 눌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동선이 보이면, 화면 하단 "답사 코스" 목록에서 미리 짜둔 산책 경로(정동길 근대건축 산책 등)를 골라 그대로 따라 걸을 수도 있다. 한옥 같은 전통 건축물은 애초에 지도에 없으니, 검색해도 안 뜨는 게 정상이다. 마커 색이 회색으로 표시된 건물은 "현존하지 않음" 상태라는 뜻이니, 실제로 찾아가는 코스에서는 자동으로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