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권을 골라서 매일 한 권씩 보여달라는 요청 자체는 단순했다. 그냥 좋아하는 책 365권 뽑아서 날짜에 하나씩 걸어두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시안을 보여줄 때마다 규칙이 하나씩 늘어나는 바람에, 나중엔 책을 고르는 것보다 규칙을 지키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지금 세어보니 그 규칙이 최종적으로 넷이다.
같은 작가가 두 번 겹치면 안 된다고 했다
초안 목록에는 좋아하는 작가 책이 자연히 몰려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 권, 도스토옙스키 두 권, 김영하 두 권.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넘겼는데, 보자마자 "한 작가당 딱 한 권"이라는 규칙이 떨어졌다. 이유를 물었더니 "365일 내내 몇 명 얘기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 다양하게 가야지"라는, 듣고 보니 반박할 수 없는 답이 왔다. 겹치는 작가 여섯 명을 솎아내고 그 빈자리를 다른 작가들로 채우느라 날짜 배열을 통째로 다시 짰다. 대신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 후보에도 없던 작가들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목록이 훨씬 다양해지긴 했다. 나중에 세어보니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 비율까지 은근히 균형이 맞아 있었는데, 이건 의도한 게 아니라 순전히 겹치는 작가를 쳐내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거였다.
번역자 이름까지 넣으라는 데는 좀 놀랐다
"이 책이 건네는 한마디" 밑에 원저자만 적어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번역서는 번역자 이름까지 같이 표기하라고 했다. "같은 문장도 번역자에 따라 어감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걸 뭉개면 안 되지"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구절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는데, 맞는 말이라 반박은 안 했다. 문제는 365권 중 번역서가 절반이 넘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는 거다. 판본이 여러 개인 책은 어느 번역자 표현을 인용했는지까지 일일이 대조해야 했고, 그것 때문에 하루가 통째로 더 걸렸다. 특히 오래전 절판된 번역본에서 인용한 문장은 지금 서점에서 파는 판본과 문장이 미묘하게 달라서, 어느 쪽을 표준으로 삼을지 하나하나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다.
"이게 왜 좋으냐"까지 매번 쓰라고 했다
처음엔 인상적인 문장 하나만 뽑아서 보여주면 될 줄 알았다. 근데 그 문장 밑에 "이게 왜 좋으면" 섹션을 반드시 붙이라고 했다 — 이 문장이 왜 의미 있는지,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까지 매번 써야 했다. 365번. 게다가 그냥 나열이 아니라 인문·철학, 소설, 과학처럼 카테고리 태그까지 달고, 월별로 넘겨보는 캘린더 네비게이션도 요구했다. "무한 스크롤이 편하지 않겠냐"고 슬쩍 제안해봤는데 "그럼 다 읽은 것 같지도 않고 계속 미루게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날짜별로 딱딱 끊어보는 구조로 확정됐다.
표지 이미지는 아예 넣지 말라고 했다
책 카드마다 표지 이미지를 붙이면 훨씬 예뻐 보일 거라 생각해서 몇 권은 시안에 표지를 넣어봤다. 근데 바로 반려당했다. 출판사마다 표지 이미지 저작권 정책이 다르고, 365권 전부 사용 허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였다. "예쁜 것보다 문제 안 생기는 게 우선"이라며 표지 대신 책 제목·저자·인용문만으로 카드를 구성하라고 했다. 디자인 욕심은 있었지만, 저작권 얘기가 나오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사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것도 설명해두라고 시킨 거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오늘 날짜 책이 바로 뜬다. 위쪽 캘린더에서 원하는 달로 넘기고 날짜를 누르면 그날 책으로 이동하고, 인문·철학·소설·과학 같은 카테고리 태그를 누르면 그 분류만 걸러서 볼 수 있다. 아무리 다른 달로 넘겨봤든 "오늘" 버튼 하나면 다시 오늘 책으로 돌아온다. 날짜 단위로 딱딱 끊어보게 만든 것도 결국 "하루에 한 권만 제대로 보라"는 의도였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그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댓글 기능은 굳이 안 붙였다
다른 프로젝트들엔 다 붙인 댓글 기능을 여기엔 굳이 안 붙였다. 하루짜리 콘텐츠에 댓글까지 받으면 관리가 안 될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규칙을 넷이나 얹어놓고 정작 안 만든 기능도 하나 있다는 게 좀 웃기지만, 그 판단 하나는 확실히 맞았다. 매일 새로 열리는 페이지에 댓글창까지 붙였으면 관리는커녕 스팸만 쌓였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