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인가 길을 걷다가 빛보다 먼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형태라고만 생각했다. 담벼락에 길게 늘어진 전봇대 그림자, 가로수 잎 사이로 떨어진 얼룩덜룩한 빛, 지나가는 사람의 뒷모습 뒤에 붙은 검은 실루엣.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졌다.
명동 쪽을 자주 가게 된 이유도 그것이다. 사람이 많고 건물이 빽빽해서 그림자가 복잡하게 겹친다. 햇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진해지고, 형태가 선명해진다. 그런데 너무 강한 빛은 오히려 사진으로 남기기 어렵다. 그림자가 너무 까맣게 뭉개지거나, 하이라이트가 날아가 버린다. 적당한 구름이 끼어서 빛이 살짝 걸러질 때가 제일 좋다. 그때 그림자가 딱딱하지 않고, 약간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오늘은 그림자가 쓸 만한가’다. 날씨를 먼저 본다. 맑기만 한 날보다 구름이 조금 있는 날이 낫다. 겨울이 여름보다 그림자가 길어서 좋고, 오후 늦게보다는 오전 중이 형태가 더 분명하다. 이런 기준이 생기니까 나가는 시간대가 조금씩 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림자 사진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편이 아니다. 노출만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대부분 형태는 남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중에 후보정할 때 손이 잘 안 간다. 흑백으로 바꾸고 대비를 조금 올려주는 선에서 끝내고 싶어진다. 그 이상을 하면 현장에서 본 느낌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이미 그 자리에서 다 끝난 사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림자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셔터를 안 누를 때도 있다. 구도가 너무 깔끔하고, 형태가 너무 예뻐 보이면 사진이 아니라 그림 같아 보인다. 나는 조금 깨진 쪽을 더 좋아한다. 누가 지나가면서 그림자를 가렸거나, 전선이 불규칙하게 가로지르거나, 벽의 균열이 그림자 모양을 망가뜨린 그런 장면. 불완전한 그림자가 더 오래 남는다.
오늘도 나갔다. 특별히 새로운 건 없었다. 평소에 가던 골목, 평소에 보던 벽. 그래도 그림자는 거기 있었다. 항상 거기 있다. 내가 보기만 하면 된다.